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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주삿바늘과 아메리칸 치즈

내가 전 병원의 ‘lunch coverage’를 맡는 날, 점심시간 끝 무렵. ‘Code Green’, 위기상황을 알리는 확성기에서 명시하는 장소가 3층 식당이다. 어느 병동 환자가 무슨 일을 터뜨렸을까.   나이가 스물 안짝으로 뵈면서 좀 뚱뚱한 여자환자가 식당 앞 복도 벽에 등을 대고 바닥에 다리를 뻗은 채 ‘L-shaped’, 니은(ㄴ)자로 앉아있다. 병동직원 서넛이 그녀를 둘러싸고 무언지 큰 목소리로 설득하고 있는 상황. 환자는 눈을 아래로 깐 채 딴생각을 하고 있는 기색.   무슨 일입니까? 글쎄, 식사를 끝내고 다들 병동으로 돌아갔는데 이 환자 혼자서만 벽에 기대앉아 한마디 말도 없이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얘는 평소에 남들과 의사소통을 곧잘 하는 편입니까? 암, 그렇고 말고요.   이름이 뭐니? 도로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보거라. 음, 치즈 샌드위치요. 금방 점심을 먹지 않았니? 그런데도 또 그게 먹고 싶어요. 직원에게 물어본다. 혹시 지금 식당에 치즈 샌드위치가 있습니까? 오늘 메뉴에 없었으니까 없을 겁니다. 얘는 늘 뭘 달라고 하는 버릇이 있어요. 우리가 오냐오냐, 하니까 다른 환자들도 따라 합니다.   주위에 다른 환자들은 없고 ‘Code Green’에 응수한 병원 직원들이 열 명이 넘는다. 환자는 얼른 자기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복도 바닥에 드러눕는다. 간호사가 ‘주사’ 오더를 내려달라고 속삭이자마자 환자가 소리친다. 주사를 놔주세요. 나는 주사 맞기를 좋아해요.   도로시는 잠시 후 주사를 맞지 않고 물약을 마신다.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병동으로 귀환한다. 몇 살이냐? 19살이요. 이마와 뺨에 여드름이 무성한 그녀가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내 대망의 치즈 샌드위치가 병동에 도착한다. 그녀가 빵의 겉 부분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도중 빵 두 쪽 사이에서 샛노란 치즈가 노출된다. 아, 저 사각형의 치즈. 오늘 새벽 내가 부엌 냉장고에서 꺼내 서서 먹던 바로 그 아메리칸 치즈.   대부분의 사람은 주사 맞기를 싫어한다. 더구나 왁자지껄한 가운데 여럿이 지켜보는 ‘Code Green’ 현장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우두커니 서서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엉덩이에 꽂히는 상황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도로시야, 너는 왜 주사 맞기를 좋아하느냐? 주삿바늘이 따끔해서 좋아요.   ‘injection, 주사’의 동사형 ‘inject, 주사를 놓다’는 어원학적으로 ‘안으로 던지다’라는 뜻. ‘~ject’로 끝나는 말로 ‘project, 투사하다’는 앞으로 던진다는 뜻. ‘reject, 거절하다’는 뒤로 던진다는 뜻. 이렇듯 ‘ject’는 기하학적이면서 다이나믹한 말이다. ‘deject, 낙담시키다’의 아래로 던진다는 뜻도 흥미롭다. 낙망이 희망의 반대말일까.   도로시는 치즈 샌드위치를 깡그리 먹어치운다. 병동직원들이 너에게 또 스페셜 트리트먼트를 해줬구나. 기분이 어떠냐? 좋아요. 그런데 그들이 왜 너에게 그러기를 꺼려하는지 알고 있니? 몰라요. 다른 환자들이 너를 질투하면 알게 모르게 큰 혼란이 일어난단다. 그녀는 뽀로퉁해서 나를 한참 째려본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담당 의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말한 후 도로시가 자주 ‘Code Green’을 일으킨다고 투덜댄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는 ‘IQ’가 약간 낮은 편이에요. 70 좀 아래랍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메리칸 치즈 아메리칸 치즈 치즈 샌드위치 병동 환자

2024-12-10

[수필] 한끼 나눔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아랑곳없이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쯤이면 마태오 성당 한끼나눔 밴은 성당 문을 나서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2년 전에 생긴  뽀구역 형제자매들이 점심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나누어줄  한끼나눔 봉투에는 샌드위치, 바나나나 사과 한개, 쿠키, 그리고 따뜻한 양말과 마스크가 들어있다. 물과 음료수, 세니타이저는 따로 나누어준다.     우리 봉사자들은 아침 미사를 드리고 곧바로 한끼를 준비한다. 빵을 데우고 햄을 굽고 소시지를 끓는 물에 익히고 양파를 볶고 치즈를 가르고 계란 프라이를 정성껏 만든다. 샌드위치 랩핑 페이퍼에 오늘의 빵을 예쁘게 포장해서 전날 준비해둔 봉투에 넣는다. 대략 하루에 160인분이다.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2021년 1월 어느 날 유튜브 주일 미사에서 본당 신부님의 강론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비록 자유롭게 밖을 나다니지 못하고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포근한 침대가 있는 방이며 아침이면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고,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욕실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집이 없어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홈리스 형제자매가 떠올랐다고 하였다.  회사도, 학교도, 음식점도 모두 문을 닫고 집에서만 있는데 그들은 피할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집을 마련해 줄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끼라도 식사를 대접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곧바로 한끼 나눔을 계획하고 2월부터 실천에 옮겼다. 그때는 의료진과 노년층만이 백신을 맞을 때였다. 봉사자가 필요했다. 걱정했는데 용기 있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성당과 일반인들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들을 걱정하고 동참했다. 처음에는 목요일 한번이었지만 토요일도 추가했다.     신부님은 그들을 뽀구역 형제자매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 성당에  열 네 번째 구역이 생겼다.  스스로 부유함을 떨치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평생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던 이탈리아 아씨시 근방 뽀르찌웅 꿀라에서 딴 이름이다.     우리는 모두 내 집에 온 손님들에게 점심을 준비하듯 정성을 다한다. 철저한 위생에 메뉴도 바꿔가며 준비한다. 햄버거나 핫도그, 햄 에그 치즈 샌드위치 등을 돌아가면서 준비한다. 그리고 수시로 새 옷, 침구 등도 나눈다. 동네 과일 가게 사장님은 한동안 싱싱한 과일을 도네이션 해 주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두툼한 점퍼도 나눈다.  무더운 여름에는 냉장고에 물을 넣어 두었다 차갑게 해서 준다. 식당이 지하에 있어서 준비한  봉투와 물을 나르느라 신부님은 물론 봉사자 몇분은 허리통도 앓았다.     첫해 추수감사절에는 타코 차를 대절해서 즉석 부리또를 300인분을 만들어 대접했다. 그날은 주일학교의 부모와 학생들이 줄을 서서 배식을 했는데 뽀구역 형제자매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학생들을 배려해서 멀찌감치 서서 식사를 받아갔다. 혹시라도 코로나를 옮길까 봐 염려해 주었다. 그들에게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을 보았다. 주어도 주어도 성이 차지 않는다.  왠지 미안하고 더 잘 해주고 싶을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부쩍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기가 미국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텐트족이  많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어느 수녀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와주라고 하였다. 어느 날 한끼 나눔을 하고 온 분이 사진을 올렸다. 텐트도 없어서 비 오는 날 노숙자가 길바닥에다 보자기를 깔고 얇은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머리에 비닐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이다.     이제는 주 정부에서도 그들을 위한 쉼터를 많이 지어 거주하게 했고 앞으로 더 많이  짓는다고 들었다.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지난해 LA시장이 된 캐런 배스도 그들을 위한 계획을 내놓았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모든 이가 둘러앉은 식탁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도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며, 함께 뛰어놀던 개구쟁이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은 본인의 잘못도 있겠지만 사회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2월이면 한끼나눔도  만 2년이 된다. 많은 봉사자가 각각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시장을 보는 사람, 물을 준비하는 사람, 하루 전날 미리 봉투를 준비하는 사람들…. 이런 공동체에 합류해서  일주일에 한번 한끼 준비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나면  왠지  그동안 내가 받았던 사랑을 누군가에게 조금은 갚은 것 같아서 발걸음이 가볍다. 아울러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들이 다시 자기 일들을 시작하여 한사람 두사람 거리를 떠나면 그것이 곧 ‘적선지가 필유여경 (좋은 일을 하면 경사스런 일이 생긴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경에도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고 하였다. 성당 문을 나서는 밴을 보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이영희 / 수필가수필 홈리스 형제자매 치즈 샌드위치 목요일과 토요일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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